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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 가미카제 유서

skyla_yeon 2019. 6. 22. 00:10

http://www.ohmynews.com/NWS_Web/View/at_pg.aspx?CNTN_CD=A0001955446

 

"특공은 개죽음"...일본 가미카제 유서의 실상

'강요된 애국심' 기록유산 등록은 '엽기'... 조선인 가미카제 두 번 죽이는 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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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음은 학도병 출신의 탁경현. 그의 일본 창씨명은 미쓰야마 히로부미(光山博文)로, 1920년 경남 사천 출생이다. 일본 교토약학전문학교 졸업 후 학도병으로 징집된 그는 특별조종견습사관 1기생 출신으로 일제 패망 3개월여 전인 1945년 5월 11일 오키나와 비행장 서해상에서 가미카제로 출격했다가 전사했다.

당시 그의 나이 24세로 전사 후 2계급 특진(대위)했다. 치란 기지 특공대원 시절 그가 특공대 지정식당 주인과 나눈 이야기가 일본서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. 또 수년 전 한 일본인 여성이 그의 고향 경남 사천에 그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려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. 고향 사람들은 그를 '친일파'로 여겼다.

http://www.hani.co.kr/arti/international/japan/622598.html#csidx65a9f968a1f7261a4bd2d306da809c6

 

“일 자살특공대 유서 유네스코 유산 추진”

미나미규슈시 시장 밝혀 특공대엔 조선인도 11명 유서엔 “결사” 가족엔 “어쩔 수 없이 간다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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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실제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는 특공작전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. 학도병 출신인 <요미우리신문>의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은 가미카제 특공대에 대해 “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출진했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들처럼 비틀거렸다”고 말한 바 있다. 해군에서 실제 특공작전을 집행했던 히라쓰카 세이치 전 소좌도 2010년 <엔에이치케이>(NHK) 방송 인터뷰에서 “군대에서는 결사를 각오하는 작전이라 해도 반드시 살아 돌아올 길이 있어야 한다. 그것이 없는 특공작전은 결국 생명 경시 풍조를 낳아 일본 해군에게 큰 해악을 끼쳤다”고 반성한 바 있다.

http://blog.naver.com/PostView.nhn?blogId=nonepapa&logNo=220931700589

 

자살특공대 '가미카제(kamikaze)', '나는 조선인 가미카제 탁경현 입니다'

가미카제(kamikaze, 神風) 가미(神)는 신, 카제(風)는 바람으로 '신이 일으키는 바람'이라는 뜻이며,​제 2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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